- 중요 : 이 글은 경어체+구어로 쓰인 글입니다.  주요섭의 <사랑손님과 어머니> 혹은 채만식의 <치숙>과 같은 서술방식을 좋아하지 않으시는 (혹은 지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일독을 권하지 않습니다.


- 시즈오 생일 기념 연성.


- 어쩌다 보니 연작 단편소설이 되어서 (...) 아래 링크해놓은 이야기를 순서대로 읽어야만 이어지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컬러버스 2부작은 읽지 않아도 크게 지장은 없지만...


[시즈이자] 가로등 불빛처럼 명멸하며 하나씩 사라져 가는 (13권 이후 시점, 컬러버스 AU 2부작 上)

[시즈이자] 빗방울처럼 쏟아져 내려 세상을 물들이는 (13권 이후 시점, 컬러버스 AU 2부작 下)

[시즈이자] 夕焼けだんだん (노을이 점점, 미정발 네타 有)

[시즈이자] 어느 사립탐정의 험난한 첫 사건 기록 (미정발 네타 有)


- 어떻게 하다 보니 전쟁조의 탐정사무소로 흘러들어온 어느 고양이의 전쟁조 관찰기입니다.  아직 성묘도 아닌 고양이를 서술자로 삼는 바람에 작법서에서 절대 피하라고 가르치는 구어체+경어의 향연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언젠가 한 번은 해보고 싶었던 일이어서 저질러봤는데, 사람이 쓸데없는 짓을 하면 안 된다는 사실만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 나츠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나오는 구샤미 선생네 고양이처럼 똑똑하지는 않지만, 그저 사람 좋아하는 고양이의 눈에 비친 포카포카한 개그물이 쓰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그냥 포카포카한 개그지(...)물입니다.


- 다시 보니 대체 무슨 약을 하고 이런 걸 쓴 건가 싶기도 합니다.  인생 살면서 근본없는 노잼의 시기를 지날 때 매일 '영국 귀족 집안의 사랑받는 요크셔테리어가 되거나 영국 총리 관저 수렵 보좌관 고양이가 돼서 데이빗 캐머런을 집사로 부리거나 이자야네 집에 고양이로 취직하고 싶다!!!' 뭐 그런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것 같은데, 그 말대로 이자야의 집에 고양이로 취직하고 싶은 간절한 소망의 경망스러운 표현 같기도 하고... 어쨌든 굉장히 근본없는 계기를 가지고 막 나가보자 하고 쓴 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시즈쨩, 생일 축하해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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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야, 이건.”

 

  안녕하세요.

 

  “엄청 실례되는 소리네, 시즈. ‘이거라니, 고양이잖아. 게다가 세이쨩이라고 이름도 지어 놨는데.”

 

  세이쨩입니다. 사실 저희 엄마가 지어준 이름은 저게 아니지만, 이 집의 1번 주인님이 이름을 세이쨩이라고 지어 주셨으니 일단은 세이쨩입니다. 그리고 지금,

 

  “생일 선물이야, 시즈.”

  “냐아앙.”

 

  ‘금발머리 2번 주인님의 생일 선물.’이라는 극한직업을 체험중입니다.

 

-

 

  안녕하세요, 태어난 지 3개월 된 고양이입니다. 저같이 생긴 애들을 랙돌이라고 부른다던데, 솔직히 말하면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어요. 사실 3개월 된 고양이는 엄마 없이 혼자 살 능력이 되니까 뭐든 알고 있을 것 같지만, 사실 뭐든 어설프게만알고 있는 이도 저도 아닌 존재거든요.

 

  그래서일까요, 지금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도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에요. 전 그냥 밤늦게까지 놀다 잠들었는데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보니 여기였어요. 엄마도 몇 주 전부터 절 멀리 떼어놓기 시작했고, 전 주인님도 이 집에서 다 키울 수는 없지 않겠니.’ 같은 말을 하셨으니 드디어 오늘 새 주인님 집에 온 거구나, 하고 짐작만 하고 있어요. 솔직히 엄마랑 헤어졌다는 사실은 좀 슬펐지만 검은 머리를 한 새 주인님1번 주인님 말하는 거예요이 잘생겨서 기쁜 마음에 그르릉거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문이 벌컥 열리더니,

 

  “뭐야, 이건.”

 

  옛 주인님 집에서 보던 캣타워처럼 길고 가느다란 사람이 들어오더라고요. 그 사람이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금빛 머리카락에서 하얀 설탕 같은 걸 털어내면서 뭐야 이건, 이라고 물었어요. 이거라니, 전 이리 봐도 저리 봐도 확실한 고양이인데요?

 

  “엄청 실례되는 소리네, 시즈. ‘이거라니, 고양이잖아. 게다가 세이쨩이라고 이름도 지어 놨는데.”

 

  그 사람은 아무래도 아까 1번 주인님이 말한 ‘2번 주인님인 것 같았어요. 1번 주인님이 저를 2번 주인님의 눈높이까지 들어 올린 뒤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을 때,

 

  “생일 선물이야, 시즈.”

  “냐아앙.”

 

  저는 2번 주인님의 생일 선물이라는 임무를 떠맡게 되었습니다.

 

  “어디서 데려온 거냐? 그 녀석.”

  “네가 전 직장에 징수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 사이에 의뢰인이 다녀갔었어. 그런데 그 사람이 의뢰비 대신이라며 고양이를 주지 않겠어?”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야, 보는 그대로지. 그 사람이 준 이 고양이가 올해 네 생일 선물이야.”

 

  아하, 모르긴 몰라도 제가 의뢰비라는 녀석 대신 이 집에 온 모양입니다. ‘의뢰비라는 녀석이 뭐 하는 녀석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랑 맞바꿀 정도라면 저만큼 귀여운 친구가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그 말을 들은 2번 주인님의 얼굴은 다 먹은 초콜릿 포장지처럼 구겨지기 시작했어요. 아무래도 2번 주인님은 저보다 그 의뢰비란 녀석이 좋은가 봐요.

 

  “난 키울 생각 없어.”

  “, 고양이 좋아하잖아. 그새 고양이가 싫어지기라도 했어?”

 

  우와, 2번 주인님은 망설이지도 않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도 금방 애교를 부릴 만큼 개냥이같은 저도 그런 말에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 저를 아는지 모르는지 2번 주인님은 잘생긴 1번 주인님을 추궁하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았어요.

 

  “나 없는 사이에 신라 녀석이 와서 실험이랍시고 네 녀석한테 이상한 약이라도 먹였어?”

  “그럴 리가.”

  “그럼 그 좋은 머리로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한 건데?”

  “그야 당연히 시즈 생일 선물 같은 거 사러 나가기 귀찮았는데 마침 내 앞에 굴러들어온 이 고양이를 생일 선물로 주면…….”

  “……주면?”

  “시즈가 고양이 키우느라 고생하는 꼴을 원 없이 볼 수 있잖아. 내가 나한테 굴러들어온 행운을 포기할 거라고 생각했어?”

 

  심오해요. 심오해도 너무 심오합니다, 이 사람. 저 가벼움이 굉장히 심오해서 그 끝이 어딘지도 모르겠어요. 어라,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아까 절 무릎 위에 앉혀두고 절 받아들인 이유를 얘기했을 때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데 말이에요. 가만있자, 그때는 분명…….

 

  “미야아아아앙.”

 

  잠깐 생각에 잠긴 사이에 2번 주인님이 손에 들고 있던 솜사탕을 집어던졌어요. 그 불쌍한 솜사탕은 무서운 속도로 날아와서 1번 주인님 눈에 맞고 사방으로 튀었답니다. 저한테 튄 솜사탕 조각이 온몸의 털이 곤두설 정도로 차가워서 저는 저도 모르게 미야아아아앙, 소리를 내며 울고 말았답니다. 순간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한다던 솜사탕은 다 이렇게 차가운 걸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뭘 던진 거야, 시즈. 눈싸움 할 거면 밖에 나가서 해.”

  “모처럼 눈이 온 걸 기념해서 눈토끼를 만들었는데 벼룩 너 때문에 냉동실에 넣기도 전에 끝장났잖아. 그리고 세이쨩이라니, 저 빨간 머리 오드아이 자식 보고 지었냐?”

  “눈토끼라니 징그러울 정도로 안 어울리네, 시즈하고는. 그리고 오늘이 첫눈인 것처럼 얘기하지 말라고, 시즈에게 일주일 전에 온 건 눈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리는 쓰레기였나 봐?”

  “어쨌든 난 저 초록 머리가 마음에 드니까 타로라고 바꿔, 고양이 이름.”

  “어라. 시즈, 미도리마 군이 그렇게 좋았어? 그래서 미도리마 군을 본받아 아침마다 오하아사 보면서 행운의 아이템 체크하고 있었던 거?”

  “오하아사는 너도 보잖아!!”

 

  두 명의 주인님이 머리색 요란한 남자들을 걸고넘어지면서 말다툼을 시작했어요. 그 광경을 보고 있으니 이 두 사람, 몇 살인지 진심으로 궁금해졌습니다. 물론 옛 주인님 식구들도 저 머리색 요란한 남자들이 나오는 만화를 목숨 걸고 챙겨 봤어요. 하지만 그 사람들은 저걸 보면서 키세 군 멋있어!!’라고 새된 목소리로 비명을 지르긴 했어도 이렇게 유치하게는 안 싸웠는데……. 어린애들도 안 하는 유치한 말싸움을 하는 거 보면 새 주인님들은 나이 먹으면서 키만 자란 게 아닐까 싶어요.

 

  “됐어, 키우든 말든 네 마음대로 해. 대신 그건 알아둬, 얼마 안 있다 관찰하는 게 싫증났다면서 버린다느니 어쩌니 하면 그때는 가만 안 둔다.”

  “명색이 생일선물이라고 준 건데 설마 버리자고 하겠어? 그리고 세이쨩의 이름은 아카시 군 이름에서 따온 게 아니야. 눈이 파란색이잖아. 그래서 세이().”

 

  검은 머리의 주인님은 저를 스윽 쓰다듬으면서 저 무서운 협박을 여유롭게 받아넘겼어요. 그런데 1번 주인님, 아까 절 받아들인 이유를 말할 때도 그러더니 이름을 그렇게 지은 이유도 솔직하게 말해주질 않네요.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게 일상다반사인가 봅니다. 슬슬 이 사람 숨 쉬는 횟수랑 거짓말하는 횟수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 세이쨩의 전 주인이 3차 예방접종을 미처 못 했다고 하더라고. 지금 동물병원 가서 하고 와. 그러고 나서 오는 길에 펫샵에서 이동장이랑 모래도 사 오고. 사료는 있으니까 필요 없어. 그 형편없는 머리가 뭘 사와야 하는지 다 까먹을 것 같긴 하지만 모래는 까먹으면 안 돼, 화장실 만들어야 하니까. 모래가 없어서 화장실을 못 만들면 바닥 청소하느라 모처럼 들어온 의뢰를 못 받을지 모른다고, 일거리 안 들어오는 탐정 씨.”

  “왜 내가 이런 일을 해야 하는데?”

  “세이쨩은 시즈 앞으로 배달된 선물이니까. 그리고 밖에는 눈이 쌓였으니 내가 휠체어를 끌고 나가기는 글렀잖아. 달리 뾰족한 수라도 있어?”

  “…….”

 

  슬쩍 웃으며 할 말 다 하는 1번 주인님을 보니 아까 2번 주인님이 손에 들고 있던 차가운 솜사탕을 냅다 집어 던진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았습니다. 2번 주인님,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걸 알면 주인님이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모르겠지만……처음 문 열고 들어왔을 때보다 10년은 더 늙어 보여요.

 

-

 

  “간지러워, 꼬리 흔들면.”

  “냐앙.”

  “나 참, 생일에 팔자에도 없던 동물병원 행이라니.”

 

  주인님이 좋아서 흔든 건데.

 

  2번 주인님은 어깨에 올라앉은 제가 꼬리 끝을 살랑살랑 흔드는 게 거슬렸는지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2번 주인님은 제가 어지간히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에요. 제가 주인님 머리 위로 폴짝 올라간 순간부터 표정이 계속 안 좋았거든요. 아니, 사실 주인님은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부터 얼굴을 한껏 찌푸리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이쯤 되니 주인님한테는 찌푸린 표정 말고 다른 표정은 없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웃으면 1번 주인님만큼 잘생겼을 것 같은데 2번 주인님은 왜 구겨진 신문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을까요?

 

  주인님이 차가운 솜사탕을 사박사박 밟으며 도착한 곳은 작은 동물병원이었어요. 주사 맞으러 온 건 까맣게 잊어버리고 신기한 물건을 보며 킁킁대고 있는데 저쪽에서 맑은 목소리가 들렸어요. 목소리가 들린 곳에는 주인님보다 머리 하나 정도 작은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 맑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주인님 어깨 위에 올라앉은 저를 보더니 풋, 하고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내다가 급하게 입을 다물지 뭐예요. 아무래도 그 모습은 저만 본 모양이에요.

 

  “어서 오세요. 어머, 어깨 위에…….”

  “높은 곳을 좋아하는 것 같더군요, 이 녀석이. 그런데 선생님은 어디……?”

  “확실히 고양이가 높은 곳을 좋아하긴 하지만 어깨 위에 올라가는 고양이는 흔치 않은데, 안녕하세요. 이시다 미호입니다, 그렇게 안 보이긴 해도 수의사예요. 고양이 종합 백신 맞으러 오셨다고 하셨죠. 주인 분 이름이?”

  “헤이와지마 시즈오입니다.”

  “고양이 이름은요?”

  “세이, 라고 지었더군요. 이 녀석을 데려온 사람이.”

 

  반달눈으로 생글생글 웃고 있던 이시다 선생님은 주사 맞으러 왔다는 말에 저를 반쯤 들어 올려 여기저기 살펴보기 시작했어요. 어디 보자, 귀도 깨끗하고, 발톱도 깎은 지 얼마 안 됐고눈도 깨끗하네요. , 주사 맞을까? 조금 따끔할 거야. 금방 끝나긴 해도 약간 아플 거니까 조금만 참으렴.

 

  이상하죠, 예쁜 선생님은 곱게 휘어진 눈으로 상냥하게 말을 하는데 왜 제 귀엔 이거 엄청 아프단다. 영겁의 시간이 널 기다리는데 300년도 안 묵은 네가 이 나락의 고통을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네.’로 들릴까요? 두 번씩이나 맞고 세 번째 맞는 주사인데도 매번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새로움에 끼야아아아앙, 하고 울면서 눈물 고인 눈으로 주인님을 쳐다봤어요. 그런데 주인님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저 같은 건 안중에도 없어 보였습니다. 주인님 못됐어요, 그래도 주인님의 생일 선물인데.

 

  “세이쨩은 착하네요, 물지도 않고. 그런데 이름을 직접 지은 게 아니라고 하시니 좀 의외였어요. 전 헤이와지마 씨가 본인 이름을 따서 지으신 줄 알았는데.”

  “이름을 지은 녀석이 고양이 눈이 파란색이라 그렇게 지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제 이름하고는 무슨 관련이…….”

  “시즈()는 음독할 때 세이()라고 읽잖아요. 그래서 그런 줄 알았어요.”

  “유감이지만 그 자식은 그런 걸 생각해가면서 이름을 지을 녀석이 아니라서.”

  “그런 건 모르는 거예요. 상대가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관련이 없어 보이는 것에 자신의 진심을 슬쩍 끼워 넣는 건 흔한 일이니까요. 어쩌면 그 분이 헤이와지마 씨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네요.”

 

  전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고 이시다 선생님을 쳐다봤습니다. 1번 주인님이 제 이름을 그렇게 지은 이유를 정확하게 짚었기 때문이에요. 1번 주인님은 제 눈이 파란색이라 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주인님의 이름을 따서 세이()라고 지었다고 했거든요. 이 예쁜 선생님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요? 아니, 우리 주인님만 그런 데에 무신경해서 모르는 걸 수도 있겠네요.

 

  “…….”

  “어머, 저도 모르게 말이 많아졌네요. 주사를 맞았으니 당분간 목욕은 시키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중성화 수술을 해야 할 때 다시 오겠습니다.”

  “조심해서 가세요.”

 

  예쁜 선생님이 유리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는 순간에도, 심지어 제가 다시 주인님 어깨 위로 폴짝 뛰어오르는 순간에도, 그리고 사료 냄새랑 간식 냄새가 가득한 고양이의 천국에 들어서는 순간까지도 주인님은 말없이 터벅터벅 걷기만 했어요. 주인님은 고양이의 천국으로 가는 내내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멍한 표정도 보여줬는데, 그 표정이 정말 볼 만했습니다. 아마 1번 주인님이 봤다면 분명 그 표정을 사진으로 남겨서 잊을 만하면 사진을 꺼내들고 놀렸을 거예요.

 

  고양이의 천국은 동물병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아마 천국이 있다면 이런 곳이 아닐까 싶었어요. 어디선가 옛 주인님이 비싸다고 특별한 날에만 주던 쉐바라는 이름의 간식 냄새랑 제가 있으니까 먹어는 주는 거다냥.’ 하고 먹어치웠던 몬페티의 냄새가 섞여 제 코를 간지럽히기 시작했어요. 물론 간식을 향한 저의 순두부 같은 사랑을 꿈에도 모르는 주인님은 머리카락을 마구 헤집으며 고양이용 모래를 찾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어느 거 고르면 되지, 하고 고민하는 주인님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위쪽에서 향긋한 냄새가 났어요. 익숙하고도 향긋한 냄새에 고개를 들어 보니 눈앞에 캣닢 쿠션이 있는 게 아니겠어요? 그 순간 저는 제가 주인님 어깨 위에 있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고 앞발로 캣닢 쿠션을 잡으려고 꼼지락거리기 시작했어요.

 

  “뭐야, 갑자기 왜그거 좋아해?”

  “야아아옹.”

 

  주인님은 제가 갑자기 꼼지락거린 탓에 적잖이 놀란 눈치였어요. 순간 어쩐지 캣닢에 영혼을 팔아넘긴 고양이가 된 것 같아 머쓱해졌습니다.

 

  “고양이는 개박하 냄새를 좋아하는 건가……. 그것까지 사줄 현금은 없는데. 아니잠깐만. 6000엔 이상 사면 배달을 해 준다는 말이지? 아까 혹시 몰라서 이자야 자식 카드를 들고 나왔는데…….”

 

  벽에 붙은 종이를 보던 주인님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습니다. 이윽고 주머니를 뒤적거린 주인님이 꺼내든 건 직사각형의 작은 물건이었는데, 저게 있으면 캣닢 쿠션을 살 수 있나 봅니다. 그런데 이자야 자식이란 건 1번 주인님을 말하는 걸까요?

 

  “널 내맡긴 벼룩 자식한테 복수하는 셈 치고 써볼까.”

 

  순간 주인님이 씩 웃는 모습을 본 것 같은데, 제 착각일까요. 그나저나 남의 돈 막 써서 저한테 캣닢 쿠션 사주고 그러면 제가 좋아할 줄 아신 모양인데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랑합니다, 주인님. 사실 아까 10년은 더 늙어 보인다고 한 건 진심이 아니었어요. 시즈오 주인님, 제가 좋아하는 거 아시죠.

 

  “냐앙.”

 

  주인님이 6000엔을 채우기 위해 혹시 간식도 장바구니에 던져 넣지 않을까 예의주시하며 저는 즐거움을 가득 담아 대답했습니다. 주인님이 즐거워하는 저를 알아주시면 좋을 텐데 말이에요.

 

-

 

  시즈오 주인님은 발톱깎이, 밥그릇, 스크래쳐, 고양이용 화장실이랑 모래, 고양이 전용 목줄, 깃털막대, 쥐돌이를 부지런히 담더니 캣타워로 대미를 장식하면서하필이면 이동장이 다 팔려서 없는 바람에 6000엔을 채우기 위해 캣타워를 사야만 했어요. 하지만 주인님은 내 돈도 아닌데 뭐 어때, 하고는 시원시원한 동작으로 캣타워를 던져 넣었습니다.6000엔을 향한 대장정을 끝냈어요. 그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저는 주인님의 인생 최대 목표가 이자야 주인님 재산을 거덜 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시즈오 주인님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어깨에 매달려 있던 저를 안아들면서 말했어요.

 

  “어이, 집에 갈 때는 걸어가자. 네가 어깨에 계속 매달려 있다가는 담 걸릴 것 같다고.”

  “야아옹.”

 

  아무래도 주인님 주변에는 고양이 키우는 사람이 한 명도 없나 봅니다. 전 산책도 사람도 좋아하지만 고양이는 기본적으로 산책동물이 아니란 말이에요! 그래도 오늘은 길에 무서운 개들도 없고, 주인님 생일이기도 하니까 특별히 주인님이 채워주는 목줄을 하고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생일 기념으로 특별히 산책해주는 거예요, 주인님.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아까 이자야 자식이 한 말 듣고 내가 고양이를 싫어한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

 

  주인님의 커다란 발이 사박사박 소리를 내고, 그 옆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제 발이 폭폭 소리를 내며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차가운 솜사탕 위에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주인님이 혼잣말을 하듯 불쑥 물었어요. 그 물음에 고개를 들어 주인님을 바라보니 그 곳에는 걱정을 잔뜩 담은 갈색 눈이 있었습니다.

 

  “냐아아.”

  “알아듣고 대답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대답은 잘 하네. 고양이를 싫어하는 건 아니야. 그저 내가 가끔 주위 사람들을 다치게 하니까 너도 다칠 것 같아서 키울 생각 없다고 한 것뿐이라고. 하지만 지금도 널 키우지 않는 게 너한테 도움이 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하긴 해.”

 

  시즈오 주인님은 왠지 모르게 새침해 보이는 동작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습니다. 주인님, 이게 무슨 사랑고백도 아닌데 고개를 홱 돌리면서 말을 하고 그러세요. 제가 그런 생각을 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주인님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런데도 내가 널 원래 주인에게 돌려보내지 않은 건…….”

 

  잠깐, 이 말이랑 비슷한 말을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어디서 들었던 건지 생각이 나질 않아요. 맞아요, 이건 분명 오늘 아침에 파란 물감을 잔뜩 풀어놓은 목소리로…….

 

  「내가 의뢰비 대신 굴러들어온 세이쨩을 받아들인 건…….

 

  이자야 주인님이 했던 말이었어요.

 

  “고양이가 내게 기적을 가져다줬기 때문이야.”

  「인간이 일으킬 수 있는 가장 사소하고도 대단한 기적을 만들어 보고 싶었기 때문이야.

 

  사실 두 주인님을 처음 봤을 때 이 두 사람, 같이 사는데도 정말 놀라울 정도로 닮은 구석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부서진 햇빛 조각을 뿌려놓은 금빛 머리와 밤하늘 한 자락을 잘라온 듯한 검은 머리가, 갈색 눈과 빨간 눈이 하늘과 땅의 색만큼이나 달라서 이 두 사람은 대체 왜 같이 살고 있는 걸까 싶었으니까요. 그런데 이제 보니 이자야 주인님이랑 시즈오 주인님, 정말 많이 닮았습니다.

 

  “이건 그 녀석에게도 지나가듯 했던 말이지만그 녀석과 재회하던 날, 공동묘지에서 길고양이한테 밥을 준 적이 있었어. 아마 거기서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면 난 집에 일찍 돌아갔겠지. 그럼 그 녀석이랑 마주칠 일도, 조금이나마 나 자신에게 솔직해질 기회도 없었을 거야.”

  「시즈가아아, 넌 시즈를 모르겠구나. 그러니까 조금 있으면 들어올 ‘2번 주인녀석이 언젠가 그런 말을 했어. 내가 도쿄에 다시 나타났던 날, 야나카레이엔에서 길고양이한테 밥을 주지 않았다면 날 만날 일 같은 건 없었을 거라고. 그리고 지금처럼 이렇게 미묘한 공존 상태를 유지할 일도 없었을 거라고 했지. 한 마디로 시즈에게 고양이는 기적의 매개인 셈이야.

 

  시선을 발끝에 떨군 채 옛일을 떠올리는 것도.

 

  “고양이를 보면 잊고 있었던 그 날의 기적이 다시 생각나서…….”

  「그리고 말이지,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사라진 찰나의 기억을 다시 살려내는 건…….

 

  그러더니 과거 어느 날의 기억을 떠올리려는 듯 고개를 들어 먼 곳을 쳐다보는 모습도.

 

  “그래서 널 돌려보내지 않은 거야.”

  「인간인 내가 만들 수 있는 가장 사소하고도 위대한 기적이라서 나는 그 기적의 매개인 세이쨩을 받아들이기로 한 거야.

 

  눈을 감은 채로 되살아난 과거에서 작은 진심을 찾아내려고 하는 모습도, 서로가 듣지 못하는 곳에서 진심을 털어놓는 그 목소리의 울림도.

 

  “이자야 자식은 내가 그런 말을 했었다는 것도 기억 못 하겠지만.”

  「, 시즈는 멍청해서 내 의도 같은 건 감히 짐작도 못 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말이야.

 

  바람 빠진 웃음소리와 함께 상대는 끝내 그 사실을 모를 거라고 말하는 것도, 비터애플 맛 나는 쓴웃음을 짓는 모습도, 전부 닮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말을 서로에게 절대 하지 않을 정도로 솔직하지 못한 점도 무지 닮았어요.

 

  “그르릉.”

 

  역시 사이좋은 친구면서 겉으로만 죽도록 싸웠던 게 분명합니다, 이 사람들. 저는 엄청난 비밀을 저만 알게 되었다는 생각에 기뻐서 주인님 다리에 머리를 비비적거리며 집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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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했다고 또 낮잠이야, 저 자식은.”

 

  차가운 솜사탕 위에 사뿐사뿐 발자국을 찍으며 집에 돌아왔더니, 이자야 주인님은 한 손에 지팡이를 꼭 쥔 채 소파에 모로 누워 잠들어 있었어요. 자는 모습이 우리 누나랑 비슷한 걸 보니 주인님은 분명 전생에 고양이였을 거예요.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이자야 주인님을 보던 시즈오 주인님은 의미심장하고도 무서운 한 마디를 던졌습니다.

 

  “저 얄미운 벼룩 자식 나중에 캣타워로 딱 한 대만 치면 좋을 텐데……. 캣타워는 예전에 썼던 교통표지판보다는 강도가 약하니까 금방 부서지려나.”

 

  저기요, 주인님. 캣타워든 교통 표지판이든 뭐가 됐든 그런 걸로 사람 치면 죽어요. 그리고 캣타워로 맞은 사람 걱정을 먼저 해야지 왜 캣타워가 부서질 걱정을 먼저 하시는 거예요? 게다가 저 호리호리한 몸으로 교통표지판은 어떻게 뽑은 건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주인님이 이 동네의 살아있는 도시전설이나 심령현상도 아닌데 말이에요.

 

  시즈오 주인님이 골이 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뒤 제 목에 걸려있던 목줄을 풀어주고, 잘 마른 수건으로 제 발을 닦아주고, 사료를 가져와 밥그릇에 우르르 쏟아주고, 물그릇에 물을 담아주는 순간까지도 저는 답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는 것뿐이라는 게 아쉬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사람 말을 할 수 있었다면 교통표지판은 어떻게 뽑은 거냐고 물어볼 수 있을 텐데.

 

  “, 저 녀석이나 나나 어젯밤에 제대로 못 잤으니까 나도 좀 잘까. 너도 적당히 놀다 지치면 소파에 올라가서 자.”

 

  주인님은 그렇게 말하고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그러더니 소파에 머리를 기대고는 금방 잠들어 버렸습니다. 저는 총총걸음으로 물그릇을 향해 가서 물 몇 모금을 할짝거리고는 다시 주인님 옆으로 와 앉았습니다. 심심함을 못 이겨 꼬리를 바닥으로 탁, 탁 치고 있으니 문득 두 사람은 어제 뭘 하느라 잠을 못 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즈오 주인님은 내일이 생일이라고 생각하니 설레서 잠을 못 자고, 이자야 주인님은 시즈오 주인님 생일 선물로 뭘 사줄까 고민하느라 잠을 못 자기라도 한 걸까요?

 

  “냐아아앙.”

 

  잠에 취해 미동도 없는 두 사람을 한참동안 바라보기만 하는 게 내심 재미가 없어서였는지 저도 모르게 하품을 하고 말았어요. 저는 나도 같이 잠이나 자야겠다냥.’이라고 생각하며 소파 위로 폴짝 뛰어올라가 두 사람 머리 사이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 그러고 보니 주인님들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두 주인님의 얼굴 감상을 하느라 할 말이 있었다는 사실도 까먹고 있었습니다.

 

  이건 비밀인데, 사실 제 진짜 이름은 키세키(奇蹟)였어요. 태어났을 때 형이나 누나에 비해 너무 작고 약해서 엄마도 예전 주인님도 제가 금방 죽을 줄 알았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는지 죽지도 않고 살아났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옛 주인님도 우리 엄마도 제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했어요. 더 자라서 어디로 가든, 어떤 주인을 만나든 그 곳에서 누군가에게 기적이 되어줄 거라는 뜻으로 지었대요.

 

  그 말을 마치고 저는 몸을 쭉 늘려 앞발로는 이자야 주인님의 손가락을 잡고, 꼬리는 시즈오 주인님의 머리 위에 얹었습니다. 맞다, 제일 중요한 한 마디가 남았는데 깜빡 잊고 있었네요.

 

  그리고 두 분은 고양이 때문에 다시 만나셨다고, 그렇게 말하셨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존재 자체가 기적인 제가 이제부터 두 분의 또 다른 기적이 되어드릴 테니,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는 말이었어요.

 

  마지막 말을 전하고 나서 저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과 옆에서 퍼져오는 캣닢 냄새를 친구 삼아 잠을 청했습니다.

 

  시즈오 주인님, 그리고 이자야 주인님도 좋은 꿈 꾸세요.

 

Fin.

Written by Flane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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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살면서 자신의 지각 범위 밖에 있는 대단한 일에 기적이란 말을 붙이는 데에 익숙하지만, 따지고 보면 매 순간 살아있는 것도, 살아서 누군가와 마주치고 무언가를 공유하는 사소한 것들도 기적이라면 기적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소한 기적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충분히 이야기가 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Posted by _Flaneur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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